169. 영원한 것은 없다
[[제1590호] 2018년 4월 14일]
변화와 변질은 다르다.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을 결혼 전에는 하루만 못 봐도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보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사랑이 식은 것인가? 아니면 변질된 것인가?
‘너 없이는 못 살겠다’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루아침에 매정하게 변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베이컨이 말했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초년에는 여주인공이고, 중년에는 친구이고, 노년에는 유모다.”
아내들은 착각한다. 연애 시절 남자가 잘해주면 평생 호강할 것이라 나름대로 온갖 상상을 하고 결혼에 대한 환상적인 밑그림을 화려하게 그려 놓는다.
그러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림이 조금만 달라지면 남편을 몰아세운다.
“당신, 결혼 전에는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 극장가고 외식하기로 했잖아! 청소같이 힘든 일은 도맡아 하고 아이 생기면 육아도 무조건 반반이라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한 가지도 지킨 게 없어. 난 속았어!”
아내들은 결혼 전 남자들의 당의정 같은 거짓 약속에 속아 울분을 토한다. 남자들은 콩깍지 씌워지면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하늘의 별도 따주고 싶은 심정이다. 당연히 뭐든 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 시기엔 그럴 마음이 100%였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면 결혼이라는 목적이 이루어졌으니 잡은 물고기에 먹이 줄 필요가 없어졌다.
하나의 목표를 채웠으니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아내에게 다소 소홀하게 되지만 사랑하니까 이해하려니 생각하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문제는 이런 남편의 심정을 이해할 아내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내들은 눈앞에 보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가슴 깊이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여보, 사랑해!” 한 마디가 “자자!”보다 쉽게 나와야 하는데 남성들은 말에 서투르다. 돈 드는 것 아닌데도 너무나 못한다. 정감 있는 말 한마디에 감동이 되고 순화되는 게 여심이다.
오늘 좋다고 내일도 좋은 것 아니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지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영원한 것은 없다’이다. 영원해 보이는 것도 조금씩은 다 변해왔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고 이것은 인류의 생존 역사와도 맥을 같이 한다. 남성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초라해 지는 것은 변화에 민감한 여성과 달리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좋은 것이나 변심이나 변질은 나쁜 것이다. 아내들은 변화에 둔한 수컷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로 남자들이 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