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우리 집에는 집사람이나 마누라가 없다
친지간에 호칭을 보면 두 사람 간의 친밀도를 알 수 있다.
호칭과 억양 속에 쌍방의 모든 관계성이 녹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표정이나 호칭을 관찰해 보면 친밀도가 나타난다.
서로 호칭만 잘 사용해도 관계가 좋아진다.
처음에는 오빠, 자기야, 서방님, 여보, 당신으로 부른다.
그러다가 이 웬수, 짐승, 영감태기가 되고 영식 씨, 삼식이 같은 젖은 낙엽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부부간 호칭과 지칭이 다양하기도 하다.
남편 호칭에는 오빠, 자기야, 여보, 당신, 서방님, 영감, ~아빠, 바깥양반, 남편 등이 있다.
아내 호칭과 지칭에는 자기야, 여보, 당신, ~씨, 아내, 임자, 와이프, 마누라, 마눌, 안댁, 집사람, 안사람, ~엄마, 여편네, 색시, 부엌데기, 안주인 내자, 제 댁 등 많기도 하다.
신혼 초 아내를 어떻게 불러야 할 줄 몰랐다.
‘여보’라고 부르기에는 생경하고 어색했다.
부르기는 해야 하고 “저기요”, “여기 좀 봐요”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헬로야” 그랬더니 “나 헬로야 아니거든요”
그래서 다시 “여보야” 하니 “여보야”도 아니란다.
요즘같이 ‘자기야’, ‘오빠’라고 서로 쉽게 부르면 될 것을….
우리 세대에는 자기 남자친구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은 결혼 전 ‘오빠’라는 말이 통상어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그 감정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당분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내 딸은 49세다. 그런데도 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
들을 때마다 멋적어 지청구를 해도 고쳐지질 않는다.
내 딸이 60이 되고 7~80이 되어도 오빠라고 할까 염려가 된다.
70~80대 할머니가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면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로 보일까? 호칭에는 시류가 있다.
그러나 시대와 세대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여보’이고 ‘내 아내’가 좋은 것 같다.
‘여보’는 ‘여기 좀 보세요’, ‘나 좀 보세요’의 준말이기도 하다.
또 한자로는 ‘보배와 같은 소중한 사람(如寶)’과 ‘보배와 같은 여인(女寶)’이라는 뜻이 있다.
어느 날 내 아내가 정색을 하고 요청을 했다.
“집사람이라고 하지 말아요. 집사람이라면 집에만 붙어 있는 사람 같고 집 귀신같은 어감이에요.”
그 후 나는 ‘내 아내’라는 지칭을 꼭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집사람이 없다.
마누라도 없다.
호칭이나 지칭만 잘 해도 부부간 사랑은 깊어질 것이요.
방 빼는 일은 없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