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사랑의 적은? | |
[[제1622호] 2018년 12월 15일] | |
내 아내는 내가 전화 받는 소리만 옆에서 들어도 전화한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안다. 무뚝뚝한 말투로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전화를 끊어 버린다면 아내일 확률이 높다. 반면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부드럽고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다면 상대는 여자이다. 그것도 젊은 여자일 것이다. 한 중년 사장의 이야기다. 하루는 회사 일로 뛰어다니다 피곤해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갔다. 아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만사가 귀찮아 아내의 반김도 거들떠보지 않고 누워버렸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거래처의 젊은 여직원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자알 논다. 마누라가 잘 다녀왔냐고 인사할 때는 받지도 않더니……. 지금 전화 건 사람 젊은 여자지? 다른 여자한테 하는 거 반 만큼만 마누라한테 해 봐라.” 아내는 자신한테 무관심한 남편이 다른 여자들한테 다정스럽게 대하는 것을 보며 당연히 속이 상했을 것이다. 골프장에서도 함께 골프를 치는 남녀가 부부인지 아닌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여행지에서도 함께 온 남녀가 부부인지 아닌지 더욱 구분이 된다. 식당이나 카페에 바싹 붙어 앉아 도란도란 속삭이는 커플은 백발백중 연인이다. 무덤덤하게 말없이 마주 앉아 자기 밥만 퍼먹고 있으면 부부이다. 참 서글픈 풍경이다. 늘 옆에 있는 사람이기에, 이미 내 여자가 되어 버렸기에 소중함을 모르는 것일까? 아무리 좋은 것도 일상이고 익숙해지게 되면 무덤덤해진다. 프랑스 시인 마리 로랑생은 불쌍한 여자를 이렇게 나누었다. “버림받은 여자, 실연당한 여자, 떠도는 여자, 죽은 여자, 그러나 그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이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아내야말로 잊힌 여자가 아닐까? 사랑의 시작은 관심이고 관심은 곁에서 늘 보살펴 주는 것이다. 배려하고 신경을 써 주는 것이다. 무관심은 증오보다 무섭다. 증오는 차라리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사랑의 적, 사랑을 해치는 가장 큰 독소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인 것이다. 아내한테 제비족들이 하는 것 반만큼만 잘해줘 봐라. 웃음과 행복이 버무려 질 것이다. 정력이 넘치고 끼가 있는 밝힘증 남성들이여, 내 여자 아닌 곳에 곁눈질 하거나 침 흘리지 마라. 아내는 이 세상 수많은 여자 중에 하나뿐인 내 여자다. 한 여자와 결혼할 때 나는 35억 명의 여자를 포기해 아쉽다. 이제 포기한 여자들은 모두가 그림의 떡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