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청소년 시절

 

1930년대 말 일화다. 5남매를 둔 한 여인이 마흔네 살의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사회적인 편견도 있고, 늦은 나이의 임신이 창피한 생각이 들어 아이를 떼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변변한 병원도 의사도 없었다. 여인은 스스로 아이를 떼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다. 허리를 동여매 보기도 하고 높은 데서 떨어져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전해들은 얘기로 어떤 식물 즙을 마시면 아이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 여인은 독한 식물 즙을 마셨다가 그만 의식을 잃었고, 부엌 덤불 더미에서 한두 시간을 쓰러져 있다가 깨어났다.

그렇게 사선을 넘고 깨어나 가까스로 해산하게 되어 태어난 아이가 바로 필자 두상달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래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사선을 넘었다. 그래 산아제한 ‘산’ 자만 들어도 경기가 날 정도이다. 우리 어머니가 병원과 의사가 없던 시절에 살았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한다.

내가 예수를 믿고 보니 내 인생 전체가 덤이고 은혜의 나날들이다. 나는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나를 낳으셨기 때문에 어머니를 오래 모시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돌아가셨다. 그 어머니를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찡하고 먹먹해진다.

어렵게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을 먹고 자랐다.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형들은 공부들을 모두가 잘했다. 1,2등을 했다.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 시절 끝에서 5등을 벗어난 일이 없다.

수우미양가에서 모두가 양가 일색이었다. 종합 평가에서 “불량”이라고까지 쓰여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괜찮다 한 놈은 공부 못해도 괜찮다며 나를 품어주셨다.

어려서 별명이 까불이였다. 말썽을 부려도 언제나 나를 지지하여 주었고 기를 살려 주었다.

공부를 못했는데도 시골 중학교 시험에 합격을 했다.

영어 첫 시간이었다. 나와서 알파벳을 써보라고 선생님이 지적을 했다. 다행이 형한테 알파벳을 미리 배워 쓸 수 가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오기에 뒷걸음치며 뒤로 물러났다. 선생님이 다가오면 매번 손바닥을 맞거나 벌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다가오시더니 내 어깨를 만지시며 “참 잘 썼다.” 칭찬을 해주셨다. 잘 썼다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왜? 학교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선생님 칭찬이다.

그 칭찬과 격려 때문에 1학년 1학기 때 전체에서 23등, 2학기 때 3등을 했다.

영어는 1등이었다. 2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수석을 했고 특대생으로 학비를 면제 받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 고등학교 지금 이름도 없어졌다.

그 학교에서 소위 SKY 대학을 들어간다면 기적이었다.

그런데 고려대학교 경제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성적이 인생의 전부라면 오늘 나는 루저의 삶을 살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전폭적인 사랑과 격려 그리고 중학교 때 격려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로 오늘 내가 있다.

 

– 두상달 장로

(사) 가정문화원 이사장
칠성산업(주) 대표이사
(주)디케이 대표이사
(사)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및 이사장
중동선교회 이사장 및 명예이사장
(전)사단법인 한국기아대책기구 이사장
(전)기독실업인회 중앙회장 및 명예회장
한국직장선교회, YFC 이사장
국내 1호 부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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