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칼럼
칼럼2018-04-18T18:53:20+00:00

[한국장로신문] 58. 만짐의 기적, 몸도 마음도 만져라

58. 만짐의 기적, 몸도 마음도 만져라 [[제1471호]  2015년 8월  22일] 사람은 온몸에 접촉수용체 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자꾸 피부를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접촉을 해 주어야 세포막에 연결된 단백질을 활성화시켜 건강해진다. 육체적 접촉을 해 주어야 다양한 신호 전달로 에너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육체적 접촉이 결핍된 아이들은 ‘마라스무스(Marasmus)’라는 특이한 병에 걸리게 된다. 이 병은 어린아이들이 특별한 원인 없이 시들어 가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이다. 바로 에너지 영양실조의 한 형태인 접촉 결핍증인 것이다. 이 병을 발견한 르네 스피츠 박사는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국립병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병원에 수용된 아이들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데도 잘 자라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멕시코로 휴양을 떠났다가 빈민촌의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7. 칭찬 속에 담긴 플러스(+) 에너지

57. 칭찬 속에 담긴 플러스(+) 에너지 [[제1470호]  2015년 8월  8일] 그리스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 이야기가 나온다. 피그말리온은 옛날 그리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조각가였다. 어느 날 그는 멋진 상아를 구해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여인을 대하듯 조각상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고 온갖 장식품으로 아름답게 꾸며 주었다. 밥을 먹을 때는 마주 세워 두고 잠을 잘 때는 옆에 뉘인 채 날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는 동안 사랑은 더욱 깊어져서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매우 간절히 기도했다. “아, 이 조각상이 생명이 있는 여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침내 아프로디테가 그의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6.“구나구나” 어법의 기적

56.“구나구나” 어법의 기적 [[제1469호]  2015년 8월  1일] 온종일 업무에 시달린 남편이 파김치가 되어 퇴근해 들어왔다. 집안은 난장판이고 막내 녀석은 뛰어놀다 다쳤는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징징거린다. 가뜩이나 피곤했던 남편은 인상을 팍 긋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종일 집에서 애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뭐했어? 집구석이라고 들어와도 어디 편히 쉴 수가 있어야지.” 이러면 집안 분위기는 단박에 싸늘해진다. 아내는 깊이 상처받고 대화는 단절된다. 이 부부의 사랑의 가계부에는 마이너스가 누적된다. 또 다른 상황. 남편은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하고 답답하다. 이번에도 승진 순위에서 밀려나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확 사표를 써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회사에 계속 남아 있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이래저래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5. 일인칭 어법으로 말하기

55. 일인칭 어법으로 말하기 [[제1468호]  2015년 7월  25일] 오랜만에 남편과 바깥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아내. 서둔다고 서둘렀는데도 차가 밀리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아내는 마음을 졸이며 헐레벌떡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내를 보자마자 남편은 무턱대고 핀잔부터 준다. “당신, 왜 이렇게 늦었어? 좀 빨리빨리 움직이면 안 돼? 도대체 시계는 뭐하러 차고 다니는 거야?” 안 그래도 미안하던 아내의 마음은 잔뜩 움츠러든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운한 생각이 든다. ‘흥. 자기는 늦은 적 없나? 차가 이렇게 밀릴 줄 누가 알았어야지.’ 만약 이 상황에서 남편이 ‘일인칭 어법’을 사용했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당신이 늦어서 내가 걱정을 많이 했어.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밀렸지?”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아내는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4.길거리 대화와 침실 대화

54.길거리 대화와 침실 대화 [[제1465호]  2015년 7월  4일] 대화에도 등급이 있다. 부부교육을 통해 대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막상 실전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있다. 대화를 하긴 해야겠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고작 하는 말들이 이렇다. “밥은 먹었어?” “강아지 밥은?” “화분에 물은 주었어?” 등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대화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것은 그냥 업무 보고에 해당한다. 업무 보고도 중요하겠지만 부부간에는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마음을 나누고 느낌을 말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지정의”로 내 전체를 나누는 것이다. 바로 1등급 고품격 대화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이웃집 아저씨를 만나면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이때 그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3.해답보다는 공감을

53.해답보다는 공감을 [[제1464호] 2015년 6월 27일] 나는 운전면허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다. 내 아내는 여섯 번이나 시험을 치르고서야 겨우 면허증을 딸 수 있었다. 여섯 번이나 면허시험을 치룬 여자와 나는 같이 살고 있다. 아내가 자꾸 시험에 떨어지니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네 번째 시험을 보고 온 날은 집에 오자마자 궁금해서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참 하는 이야기를 들어봐도 떨어졌다는 건지, 합격했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간단히 결과만 이야기하면 될 걸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으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면허시험관에게 마구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떨어진게 확실했다. 너무 까다로운 시험관이 걸렸다는 둥, 사람 신경을 살살 긁으며 약을 올리는 나쁜 사람이었다는 둥,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2.수다 아니면 무슨 낙으로

52.수다 아니면 무슨 낙으로 [[제1463호]  2015년 6월  20일] 연구 자료에 의하면 남자가 하루에 쓸 수 있는 단어는 7천 단어에 불과하다. 반면 여자는 3배에 해당하는 2만2천 단어 정도를 쏟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가 아닐 경우, 여자들이 집 안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몇 단어나 될까? 시장에 가고 아이들 보고 이웃과 나누는 짧은 이야기는 2천~3천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2만 단어가 남아 있는 아내들은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맨발로 뛰어나가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들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여보, 온종일 무료했던 참에 잘 왔어요. 어서 빨리 내 말 좀 들어줘요.’ 그런 남편을 붙들고 나머지 아직 사용하지 못한 2만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1.결론만 들으려는 남자, 서론이 긴 여자

51.결론만 들으려는 남자, 서론이 긴 여자 [[제1462호]  2015년 6월  13일] 부부 대화에 있어 남편들이 아내에게 갖는 불만은 “도대체 결론이 뭔지 모르겠다” 라는 것이다. 반면 아내들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결론이 뭐야? 결론만 말해”라고 다그치는 남편의 태도에 당혹감을 느낀다. “부부가 이야기 좀 하자는데, 무슨 토론장에 나왔어요? 결론이 왜 중요해요? 그냥 이 얘기, 저 얘기 재미삼아 나누는 거지요.” 이런 아내들의 항변을 남편들은 한마디로 일축한다. “아니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아무 결론도 없는 이야기를 뭐하러 합니까?” 이런 갈등 역시 남자와 여자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남자들은 주로 ‘결론만 간단히’ 이야기하는 축소결론형 어법을 사용한다. 만 가지 생각이나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재주를 가지고 타고났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들에게는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50.싸우며 정들며 사는 부부

50.싸우며 정들며 사는 부부 [[제1461호]  2015년 6월  6일] 우리는 부부가 같이 결혼 주례를 한다. 부부가 같이 주례를 하는 것이 독특하다. 주례를 하면서 신랑 신부에게 때로는 싸우며 살라고 한다. 주례사에 싸우라고 말하는 것도 우리밖에 없다. 싸움이 안 되는 부부가 문제이다. 잘 싸우고 나면 더욱 가까워지는 게 부부이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맞추어 가는 조정과 서로 받아줄 줄 아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때로는 싸우는 것이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완충작용이 되기도 한다. 유지할 값어치가 없는 위장된 평화가 있다. 때로는 부딪치고 싸우는 것이 단기적인 평화보다 낫다. 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싸우는 것이 문제이다. 싸우되 싸움의 Rule을 모르거나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문제이다. 싸우며 살아도 행복한 가정들이 많다. 싸움을 통해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한국장로신문] 49.불혹의 나이는 탈선의 시기

49.불혹의 나이는 탈선의 시기 [[제1460호]  2015년 5월  30일] 사람들은 평상시 진실로 값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서양에서 싫증나면 바꾸고 싶은 것이 남편과 마누라와 가구라는 농담이 있다. 칵테일장이나 맥주 집에서 기본으로 주는 게 땅콩이다. 땅콩과 마누라의 3가지 공통점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퀴즈도 있다. 첫째는 공짜이다. 둘째 심심하면 시도 때도 없이 습관적으로 집어 먹는다. 셋째 다른 안주가 등장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외도심리에 ‘쿠울리지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부부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질펀하게 늘 같이 살아가는 파트너가 아니라 새로운 대상을 만날 때 그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설렘, 흥분 그리고 짜릿한 동물적 심리이다.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 새로운 사람을 멀리서 보면 다 좋아 보이는 것이다. 일상의 배우자에게서 느끼는 것과 다른 [...]

4월 26th, 2018|Categories: 두상달 칼럼|
Go to Top